모교 선생님에게 유니티를 가르칠 사람을 구인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할 일이 없던 나는 수락하게 됐다. 포트폴리오를 전송하고 몇 일이 지나지 않아 합격했다.
담당하게 된 고등학교는 제주도에 위치해 있어서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 비대면으로 계약 시간 만큼 강의하게 됐다. 재능 기부 형태의 강의는 여럿 해봤었지만, 돈을 받고 강의를 하는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살짝 있었다. 내가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전공자가 아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커리큘럼 작성을 위해서 전임 선생님의 강의 자료를 기반으로 추가하려고 했으나, 마땅한 자료가 없어 학생들이 만들어 본 게임을 바탕으로 역량을 파악하고 새로운 커리큘럼을 작성했다.
학생들은 프로그래밍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프로그래밍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커리큘럼 초반에는 컴퓨팅 사고력, 의사 코드, 논리적 사고 등을 두고 이후에는 간단한 모바일 게임을 모작을 하면서 Manager 클래스의 필요성, 유니티에서 자주 사용되는 클래스 등을 두기로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리듬게임의 MVP를 개발하고 패턴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었다. 강의를 하는 시기는 취업 준비와 동아리 막바지 활동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었는데 여러 생각을 하면서 강의 자료를 만드느라 고생이 많았었다.
가르치는 방향성이 학생들의 니즈에 부합한지 확인하고 다른 피드백이 돌아오면 다음 수업은 이전 수업에서 살짝 방향성을 틀어서 원하는 내용을 학습할 수 있도록 강의 자료를 수정하고 보완했다. 그래서 수업의 시작과 마지막의 방향성은 다른 편이다.
수업에서 처음 시작할 때에는 비전공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유니티로 간단한 게임을 모작하며 공통 클래스를 소개하려고 했다면, 마지막은 리듬게임에서 사용하는 기법과 MVP 개발을 많이 다뤘다.
이렇게 열심히 PPT를 만들다보니 대학교 교수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졌다. PPT는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매개가 아니라 커리큘럼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의도와 수업의 방향성이 다 들어있다. 나는 고작 30~40장의 PPT도 힘들었는데 교수님들은 어떻게 100장이 넘어가는 PPT를 준비하셨을까..
이러한 노력들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수업은 안정적으로 종료했고 25년도에 같은 고등학교에서 다시 강사 제안을 받을 수 있었다. 1차 제안은 시기와 일정이 맞지 않아서 아쉽게 수락하지 못했지만, 2차 제안과 3차 제안은 수락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전 강의 경험과 사이의 공백 기간 동안에 복기한 내용을 토대로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학생들이 유니티 조작이 어려워 내가 파트에 분배한 시간이 초과하여 당일 분량을 다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또, 단순히 리드하는 대로 코드를 작성하다보니 코드에 담긴 의도와 '왜 이렇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확인했다.
발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유니티를 조작하는 부분은 상세하게 PPT에 동작을 담았고 코드 작성에 들어간 의도는 부분마다 수학책 한 켠에 나와있는 개념들처럼 채우는 페이지도 넣어놨다. 초반에 중요한 부분을 배치하고 이후에는 생략 가능하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을 채움으로서 당일 나가야하는 분량의 최소치를 지정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당일에 학습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강제성 없는 과제를 추가했다.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는 발생했다. 학생들 중에서 진행도가 달라 당일 분량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고 같이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다가 수업 시간이 예상치 못하게 지체됐던 것이다.
이 문제는 Git을 사용해서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각 회차마다 모든 작업이 되어있는 Master 브랜치와 작업이 필요한 Class 브랜치로 나눠서 파일을 관리하고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에게 Class 브랜치 파일을 공유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지난 학기에서는 조명되지 않았던 점이라서 놓쳤던 것 같다.
그래도 이 문제를 제외하고 나서는 큰 문제는 없었고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직접 듣지 못했지만 담당 선생님을 통해서 반응이 좋았다고 이야기 들어 뿌듯한 마음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강사 활동은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일이었다. 프로그래밍에서도 소흘했던 기본기에 친숙해질 수 있었고 외적인 성장으로도 배우는 학생의 수준과 역량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화법,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모르는 일이지만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학생들에게 더 좋은 강사가 되고 싶다.